직장인이라면 필연적으로 ‘생산성’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한정된 시간과 집중력을 아껴 중요한 일에 집중하고 싶기 때문이죠. 생산성 도구나 강의, 책을 찾아 읽는 것도 비슷한 이유일 텐데요.
자타공인 생산성 덕후로 불리는 진대연(Dave) 님을 만났습니다. 12월 COMMIT에서 ‘업무 생산성을 높이는 일잘러의 치트키’로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법을 들려주셨어요. 대연 님은 실리콘 밸리 기업과 국내 스타트업을 오가며 12년 이상 사업을 개발했습니다. 일당백을 해내야 했던 대연 님에게 생산성을 높이는 건 생존과 같았죠. 그 여정이 궁금해 몇 가지 질문을 드렸습니다.
Q.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커리어를 시작하셨죠?
SI(System Integration) 회사의 Java 개발자로 시작했습니다. 전자공학과를 전공했는데 졸업할 때 되니 친구들은 다 반도체 회사에 취직하더라고요. 저는 서울을 벗어나기 싫었습니다.
대학교 때 처음으로 스마트폰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관심이 많았어요. 스마트폰이 처음 나왔을 때다 보니 다루기 어려워 관련 커뮤니티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아직 스마트폰 초창기라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회사는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회사를 다니면서 스마트폰 개발자 커뮤니티 활동을 했고,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개발자 행사와 웨비나를 진행하기도 했죠.
Q. 직원일 때와 대표일 때 달라진 점을 체감하세요?
스타트업에서 사업을 개발하는 역할과 작은 회사의 대표 역할은 거의 비슷해요. 인사, 노무, 비즈니스적인 업무, 프로덕트를 만드는 PM 역할도 일부 하고 있습니다. ‘이게 누구 일이지?’라는 생각이 들면 대부분 제 일이더라고요. 기존에 해오던 역할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예전에는 비즈니스에 좀 더 신경 썼다면 이제는 오퍼레이션 영역을 챙겨야 해요.
Q. 생산성 뉴스레터 ‘당근메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본격 부캐죠. 원래 생산성 도구를 좋아했어요. 요즘은 Notion, Asana 등 생산성 툴 춘추전국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미국에서는 많은 분이 좋은 툴을 활용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툴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 분이 거의 없더라고요. 제가 먼저 해보자고 결심했고 시작하게 됐습니다. 2년 반 정도 됐네요.
Q. 생산성 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나요?
귀찮은 일을 안 하고 싶었어요. 예를 들면 엑셀에 주기적으로 매출을 입력해야 하는 문서 작업이 그렇죠. 이런 일이 중요하게 처리해야 하는 일보다 많아지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이런 업무를 툴로 해결하고 싶었어요. 본질적인 일에 집중하면 삶이 좀 더 재밌어질 테니까요.
물론 툴을 사용한다고 일이 자동으로 되는 건 아닙니다. 결국에는 제가 해야 하는 것들이 분명히 존재해요. 그래도 툴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다 보면 나아지는 건 확실합니다.
Q. 죽기 전까지 단 하나의 생산성 툴만 사용할 수 있다면 대연 님의 선택은?
노션을 쓸 것 같아요. 자유도가 높거든요. 저는 변덕이 심해서 이렇게도 쓰고 싶고, 저렇게도 쓰고 싶어하는데 노션이 가장 적합하더군요.
Q. 추천하고 싶은 생산성 도구가 있다면요?
‘뽀모도로’를 잘 활용하고 있어요. 25분 동안 집중한 다음 5분 동안 쉬는 시간 관리 방법론인데, 저는 15분 동안 집중하고 1분 동안 쉽니다. 15분이 끝나면 알람이 울리는데 일이 끝나지 않았어도 1분 동안은 눈을 감고 아무것도 안 해요.
뽀모도로는 쉬는 시간이 중요합니다. 1분이든 5분이든 무조건 쉬어야 해요. 그 시간에 이메일을 보거나 다른 업무를 하면 안 됩니다.
Q. 처음으로 대연 님께 생산성에 관한 인사이트를 준 도구는 무엇이었나요?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라는 책이에요. 자기 계발서죠. 지금도 영향력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책에서 이론을 소개하면서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프랭클린 플래너’라는 걸 함께 소개했는데요, 프랭클린 플래너가 정말 인상 깊었어요.
프랭클린 플래너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다이어리입니다. 예를 들어 12월 1일에 구름과 인터뷰를 하고, 12월 7일에 다음 미팅을 잡았다고 가정해 볼게요. 그럼 프랭클린 플래너의 12월 7일 날짜에 12월 1일에 구름과 인터뷰를 했다고 적어놓는 거예요. 12월 7일에 미팅을 하면 그전에 인터뷰했던 걸 돌아볼 수 있는 거죠. 이런 연결을 처음 도입한 게 프랭클린 플래너입니다.
Q. ‘에버노트’는 어떻게 입사하게 되신 건가요?
‘에버노트(Evernote)’라는 회사를 정말 좋아했어요. 제품을 열심히 사용하면서 책도 쓰고 강의도 했습니다. 파워 유저였죠. 에버노트가 유저 컨퍼런스를 했었는데, 스피커를 공개 모집한 적이 있었어요. 무조건 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운 좋게 발표자가 됐습니다. 그렇게 처음 에버노트와 인연이 닿았어요. 나중에 에버노트 한국 지사가 생겨 채용할 때 빠르게 지원했고 합격했습니다.
솔직히 떨어질 줄 알았어요. 영어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7번이나 영어 인터뷰를 봤었죠. 그래도 안 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어요. 어떻게 보면 ‘성덕’이기도 하네요.
Q. 실리콘 밸리 기업은 국내 기업과 어떤 점이 달랐나요?
가장 큰 차이는 리더십이었습니다. 흔히 이야기하는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을 눈으로 보게 됐어요. 아무도 저에게 일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다들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하더라고요. 잘 안 되는 일은 역으로 팀장에게 시키면서요. 팀장을 장애물을 해결해 주는 도우미 역할로 활용하는 문화는 처음이었습니다. 각자가 알아서 일하는 문화도 처음이었고요. 지금은 익숙한 문화지만, 그때는 팀장이 업무 지시를 하는 게 당연했습니다.
‘에버노트’에서만 5년, 실리콘 밸리 기업에서 10년 가까이 일했는데 조금 과장하면 100배 성장한 것 같아요. 이렇게까지 성장할 수 있는 회사에 다녔다는 게 큰 행운이었죠. 무엇보다 좋은 리더를 만날 수 있었던 게 실리콘 밸리 회사를 다니며 얻은 가장 큰 복지였다고 생각합니다.
Q. 어떤 리더였는지 궁금한데요.
‘에버노트’에서 근무할 때 제품을 좋아하니까 유저들과 이야기하는 게 재밌었어요. 문득 에버노트 파워 유저와 팟캐스트가 하고 싶어 조심스럽게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Developer Relation’로 일하고 있어서 마케팅 담당자와 먼저 논의했는데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바로 윗선에 이야기하니 돌아온 답이 ‘너무 좋은 아이디어야, 데이브’였어요. 그렇게 팟캐스트를 준비하고 있는데 다음 달에 한국에 오신 보스가 저한테 20만 원 상당의 마이크를 주시는 거예요. 팟캐스트 한다고 하니 미국에서 사다 주신 거죠. 그때의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의미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야겠다는 의지가 타올랐죠.
‘Awair’에서 한국 지사장을 맡았을 때는 대표님한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제가 이 역할을 하기에는 옷이 조금 큰 것 같습니다.” 제가 과연 이 일을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더라고요. 자신이 없었죠. 그랬더니 대표님이 이렇게 말하시더라고요. “그 옷이 맞을 때는 그 옷을 벗을 때다. 나도 지금 대표라는 옷이 맞아서 입고 있는 게 아니다. 데이브도 이 옷이 맞을 정도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이야기를 듣자마자 몸집을 부풀려야겠다는 용기가 생겼어요.
제가 만난 좋은 리더는 늘 진심을 다해 동기 부여를 해주셨어요. 커리어 멘토로서도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Q. 12월 COMMIT 발표 주제가 ‘업무 생산성을 높이는 일잘러의 치트키’였죠. 대연 님이 생각하시는 일잘러는?
생산성이 높은 사람이죠. 그럼 생산성이 높은 게 뭐냐고 물어보실 텐데요. 아마 10명 중 8명은 같은 시간 동안 더 많은 일을 하는 거라고 이야기하실 거예요.
저는 생산성에 대한 정의를 바꾸었습니다. 같은 시간 동안 더 중요한 일을 하는 거라고요. 일잘러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먼저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일을 많이 하려고만 해요. 그럼 지칩니다. 중요한 일을 우선으로 뽑아내서 먼저 할 수 있는 사람은 적게 일해도 좋은 결과를 내요. 사람들한테도 인정받고요.
Q. 생산성을 고민하는 분들을 많이 만나보셨을 텐데, 생산성이 낮은 분들의 공통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보통 생산성이 낮은 분들은 생산성에 대해 묻지 않습니다. 신경 쓰지 않으니까요.
주니어분들 중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다 못 하는 분들이 생산성에 관한 고민을 토로합니다. 아직 정리를 못 하고 매니징을 못 하는 분들이죠. 주니어분들은 인생의 우선순위를 먼저 고민하셨으면 좋겠어요. 나의 우선순위를 세우는 데 시간을 많이 써야 합니다.
저는 매주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2시간 정도 다음 주를 어떻게 살지 고민합니다. 다음 주의 우선순위와 테마를 정하는 거죠. 나만의 우선순위를 정해두면 다른 업무나 일정이 치고 들어올 때 할지 안 할지 빠르게 결정할 수 있어요.
일주일 단위로 계획을 세우니 매년 52개의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거죠. 1년이라고 하면 막연한데 52주라고 하면 짧게 느껴져요. 이렇게 생각하면 좀 더 신중하게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Q. 대연 님도 방향성을 고민하는 순간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물론이죠. 나이가 든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주변에 성공한 분들이 많아지니 비교도 많이 됐습니다.
최근에 내린 결론은 결국 선택하고 가야 이 길이 맞는지 알 수 있다는 거예요. 용기가 없어서 선택 자체를 두려워하면 안 되는 것 같아요. ‘이 길을 선택해서 시간 낭비하면 어떡하지’, ‘남들보다 뒤처지면 어떡하지’라고 고민만 하면 선택하는 것보다 못 한 결과가 나옵니다. 기회 비용을 감당할 용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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