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잘하는 개발자가 되려면 개발 실력 외에도 협업 능력, 커뮤니케이션 스킬, 리더십, 책임감 등 갖춰야 할 역량이 많습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수많은 기술과 플랫폼이 쏟아지는 만큼 분명한 목표를 세우고 나아가야 하고요.
어느덧 9년 차, 뒤늦게 개발을 시작했지만, 꾸준히 성장한 개발자가 있습니다. 바로 김승호 님(raccoony)인데요. 여러 스타트업에서 백엔드 시스템을 개발하고 현재는 당근마켓 SRE로 일하고 있습니다. 44BITS 운영진으로도 활동하고 있고요. 11월 COMMIT 강연을 마친 후 승호 님을 만나 그간의 성장 여정을 물었습니다.
Q. 안녕하세요, 승호 님. 간단히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44BITS 운영진이자 당근마켓 SRE로 일하고 있는 김승호라고 합니다. 개발자가 된 지는 9년 정도 됐어요.
Q. SRE(Site Reliability Engineer)는 어떤 일을 하나요?
쉽게 생각하면 인프라에 가깝고, 엄밀히 따지면 회사마다 다릅니다. 어떤 곳에서는 SRE가 아니라, DevOps라고 부르기도 하고요. 아파트를 만드는 일에 비유하면 SRE는 상수도를 설치하고 단지의 기반 시설을 관리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Q. ‘raccoony’라는 닉네임을 사용하시죠. 어떻게 만들어진 건가요?
중학교 때 친구 별명을 거북이라고 지어줬는데, 친구가 열이 받은 거예요. 국어 사전을 뒤적이더니 저를 너구리라고 하더라고요. 너구리가 능청스럽고 음흉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했거든요. 제가 떠올린 너구리는 롯데월드 캐릭터인 ‘로티’와 ‘로니’라 쿨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때부터 자칭 ‘너굴’, ‘raccoony’로 칭하고 있어요.
Q. 첫 커리어를 에디터로 시작하셨죠.
출판 기획도 하고 교정·교열도 봤습니다. 10월 COMMIT에서 강의하셨던 김정 님이 쓰신 ‘Xcode’가 제 첫 기획서인데요. 당시 김정 님이 Xcode로 발표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서 Xcode로 책을 써보자고 무작정 명함을 건넸었죠. 그게 벌써 10년도 더 지났네요.
Q. 개발자 커리어를 시작하신 곳은 핑크퐁 컴퍼니(구 스마트스터디)인데, 그때 경험은 어떠셨어요?
제가 입사했을 때는 지금과는 다르게 아무도 모르는 회사였습니다. 개발자들 사이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어요. 어느 날 커뮤니티 활동을 하던 중에 우연히 핑크퐁 컴퍼니에 계신 분들이 발표하는 걸 보게 됐어요. 파이썬을 사용해서 멋진 웹 서비스를 구축한 게 인상 깊어 지원하게 됐죠.
스마트스터디는 개발 문화도 지금 스타트업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제도가 많았거든요. 휴가도 무제한이고, 어디서 일하든 상관없고, 보고 체계도 없었습니다. 굉장히 자유로운 문화에서 개발할 수 있었어요. 개발 실력이 뛰어난 분들도 많다 보니 마음만 먹으면 배울 수 있는 것도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사회 초년생이다 보니, 뭘 배워야 할지 몰랐던 게 아쉬워요. 자유로운 환경에 놓이니 막막한 면도 있었고요. 잘하는 분들 사이에서 쪼그라들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능력이 뛰어난 동료들에게 존경심이 많이 생겼던 시기였어요.
Q. 최고의 복지는 최고의 동료라는 말이 생각나네요.
그렇죠. 그때 동료들이랑 지금도 같이 일하고 있어요. 흩어졌다가 모이는 걸 반복하고 있죠. 같이 일했던 경험이 좋으니 어디를 가서도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회사에 갔는데 빠르게 성과를 내야 할 때 모르는 사람을 채용하는 건 리스크가 크잖아요. 합을 맞춰본 동료와 함께라면 금방 성장할 수 있으니까요.
Q. 뒤늦게 개발을 시작하신 계기가 궁금해요.
개발은 취미로 꾸준히 하고 있었습니다. 에디터로 일하면서 다루는 개발 책에는 고급 기술이 많았는데, 저는 그 기술을 활용하지 못하니 답답하더라고요. 한계를 느낀 거죠. 개발을 전업으로 하면 책에서 읽었던 기술을 실제로 다룰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마침 그때 장고(Django) 프레임워크 책을 편집하고 있었는데, 그 책을 번역하셨던 분이랑 친해졌어요. 그분이 저한테 파이썬과 장고를 배워보라고 하시더라고요. 편집하는 김에 따라 하면서 배우다 보니 재미있는 거예요.
에디터로 일할 때 만난 대부분의 개발자는 열정이 넘치는 분들이셨습니다. 아무래도 번역이나 집필이 보통 열정으로 되지 않는 일이거든요. 그런 열정을 보면서 의지를 다졌습니다. 늦은 건 아닐까 고민했지만 결국 도전했죠.
Q. 주니어 시절의 승호 님은 어땠나요?
회사 생활이 좀 막연했어요. 사수나 부사수 같은 개념도 없었고, 제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관여하는 사람도 없었거든요.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랐습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좋은데, 당시에는 마음대로 하기보다는 잘하는 방법을 알고 싶었거든요.
그나마 도움이 됐던 건 코드 리뷰였습니다. 제가 코드를 올리면 동료들이 리뷰해 주면서 코드 구조나 스타일에 대한 조언을 많이 해줬어요. 문제가 생겨서 고민하고 있으면 머리를 맞대기도 했고요. 개인적으로 컨퍼런스와 세미나도 자주 다녔습니다.
Q. 인덴트코퍼레이션에서 처음으로 CTO가 되셨죠. 개발자에서 CTO가 되고 달라진 점이 있었나요?
처음부터 CTO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어요. 인덴트코퍼레이션으로 이직하기 직전이 5년 차 정도 됐을 때인데요. 주변 동료들은 10~15년 정도의 경력을 지니고 있었는데, 스스로를 돌아보니 성장했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제가 10년 차가 됐을 때 동료들처럼 할 수 있을지 자문했는데 그럴 자신이 없었거든요. 여기에 머무르면 제 성장은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도전이 필요했어요. 모르는 환경에서 연차가 조금 낮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리드도 해보고, 부딪히는 경험을 쌓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개발 리드로 인덴트코퍼레이션에 합류했어요. 그러다 회사에 CTO가 필요해지면서 전반적인 기술 역량을 파악하고 있는 제가 CTO가 된 거죠.
Q. 어떤 CTO가 되고 싶으셨어요?
되고 싶지 않은 리더는 명확했습니다. 팀원들을 멱살 잡고 끌고 가는 리더는 되기 싫었어요. 대신 모두가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회사에 해가 될 수 있는 이야기일지라도 진솔하게 피드백 드렸었죠. 우리 회사만 있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부터 시작해 다른 회사에 가면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데도 왜 이 회사에 있는 건지 스스로 답을 구해야 한다며 의욕을 북돋아주는 리더가 되려고 노력했어요.
Q. 성장이 정체되었다고 느꼈을 때 어떻게 헤쳐나가셨어요?
인덴트 코퍼레이션에 가기 직전, 그리고 인덴트코퍼레이션에서 CTO를 맡고 1년 정도 지나서 비슷한 정체가 있었는데요. 개발보다는 매니징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다른 회사에 가서 개발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어요.
극복하려고 다양한 노력을 했죠. 평소 같으면 커뮤니티 활동을 하면서 해소했을 텐데, 코로나가 한창 심할 때라 그럴 수 없었어요. 대신 무언가를 많이 배워보려고 했습니다. 영어를 열심히 배우기도 하고, 제가 잘 모르는 분야의 개발 지식을 공부하기도 했어요. 저는 백엔드만 주로 했기 때문에 프론트는 잘 모르거든요. 프론트엔드 개발자랑 짝 코딩을 하면서 프론트 테스트 코드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Q. 동료의 성장을 이끌어 내는 방법이 있을까요?
연차가 높은데 성장에 관심이 없거나, 성장하고 싶지 않다는 사람을 성장시킬 방법은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방법을 찾아보자면 공유하는 문화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제가 회사에서 어떤 기능을 개발하면서 가짜 AWS를 만들어 주는 기술을 공부한 적이 있는데, 너무 쉬운 내용이라 굳이 공유하지 않았거든요. 동료들이 정리해달라고 해서 공유했더니 저도 역으로 많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한 동료는 그 자료에서 영감을 받아 진행하던 프로젝트에 적용해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고요.
주니어를 성장시키는 건 더 어렵죠. 인덴트코퍼레이션에서 저는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코칭해야 할 때와 리드해야 할 때를 구분하지 못했거든요. 리드는 답을 제시하는 것, 코칭은 스스로 답을 찾도록 유도하는 거죠. 리드를 할 때는 답을 제시하면 꼰대스러울 것 같아 망설였고, 코칭할 때는 답을 알고 있으니 잘 유도하지 못했어요. 아직도 상황별로 리드를 해야 할지 코칭을 해야 할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Q. 같이 일하고 싶은 동료는 어떤 분들이세요?
개발 능력은 기본 소양인 것 같고요. 결국은 협업 능력인 것 같습니다. 동료를 배려할 줄 아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Q. 인사이트는 주로 어디서 얻으세요?
커뮤니티가 큰 힘이 됐죠. 저는 혼자 놔두면 공부를 안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커뮤니티에서 스터디를 하면 그곳에 저를 던졌습니다. 강제로 공부해야 하는 시간을 만든 거죠. 처음에 독학으로 장고를 배우다 홍대에서 열리는 장고 스터디 모임에 참여했는데, 배운 게 정말 많았습니다. 나중에 그 모임이 인연이 돼서 ODK Media에 입사할 때 인연이 닿았었죠.
Q. 11월 COMMIT 주제가 ‘성장: 개발자들의 평생 과제’였죠. 성장하는 개발자에게 꼭 필요한 역량은 무엇일까요?
Never Stop이요. 항상 고민이었습니다. 분명 학교는 졸업했는데 도대체 언제까지 공부해야 하는 걸까. 현업을 하면서도 공부할 게 계속 생기더라고요. 배워야 할 지식은 계속 나오는데, 공부를 멈추는 순간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건지 고민이었죠.
말 그대로 성장은 개발자들의 평생 과제입니다. ‘이만큼 성장했으면 다 컸지’라는 생각은 지양하시면 좋겠어요. 실제로 한계를 그을 수 없거든요.
요즘 주니어분들이랑 대화를 해보면 다들 너무 잘하시더라고요. 제가 주니어 때랑 너무 달라요. 그분들은 아래에서 쭉쭉 올라오는데, 시니어라고 가만히 있으면 도태되겠죠. 시니어도 위기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Q. 승호 님의 성장 원동력이 궁금합니다.
외적으로는 좋은 동료들인 것 같아요. 주니어와 시니어 상관없이 옆에 계신 분들이 모두 잘하는 분들이다 보니 좋은 영향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내면을 들여다보면 호기심이기도 해요. 새로운 기술이 나오거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면 직접 구현하거나 운영해 보는 거죠.
Q. 주니어 개발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제 주니어 시절을 반성하는 의미에서 이야기하면 개발 실력을 키우는 데만 몰두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아까 동료를 배려하는 사람과 일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는데, 연장선상에서 협업 능력을 기르시면 좋겠습니다. 만약 같이 일하는 상황에서 제가 일을 넘겨 드려야 한다면 그 일부터 처리하면 협업이 수월하겠죠. 일종의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개발만 잘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동료를 배려하면서 협업하시길 바라요.
Edit Sunny Design Lil